나는 오늘 처음으로 전학을 간다. '안녕, 나는 즈니고에서 전학 온 18살 김재아라고 해'만 열심히 연습했다.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이 앞선다. 전 학교에서 사귄 오빠가 있다. 꽤 훈훈해서 학교에서 평판이 좋았다. 물론, 같은 학년 사이에선 이상한 소문이 돌았는데 작년에 나는 소문따위 믿지 않았다. 5개월 정도 사귀고 헤어졌을 때 그 오빠가 엄청 붙잡았다. 내가 잡히지 않자, 급기야 날 스토킹하기 시작했다. 날마다 전화하고 문자 보내고 따라오고 어떨 땐 위협도 가했다. 그래서 거의 도망치듯 이사했다.
 이것 때문에 결심했다. 절대 남자친구는 만들지 않기로.










ㄴBgm을 틀어주세요



















열여덟, 그 순간

copyright. dear_lover


Pro(4). 이민형









 






 짝꿍 이름은 정재현이었다. 정재현은 사탕을 까고 있었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쳤고 "너도 먹을래?"라며 나에게 청포도 사탕을 하나 건넸다. 난 그냥 고개를 젓고 이어폰을 꼈다. 순간 싸가지 없는 행동이라는 걸 자각했지만 이미 해버린 행동. 무를 순 없었다. 


 쉬는시간이 되고 전학생이 왔다는 소문이 쫙 퍼졌는지 너도나도 날 구경하러 모였다. 지나가는 척 슬쩍 보는 게 다 느껴졌다. 정재현의 친구들도 왔는지 저쪽에서 이름을 부르며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이동혁, 이민형이라고 했다. 이들은 친해지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난 그럴 생각이 하나도 없었다. 그 오빠도 이렇게 접근했었으니까. 그러니까 내 결심엔 남사친 안 만들기도 포함되어있는 거다.


 점심시간, 이동혁과 이민형이 처음 보는 남자애와 함께 우리 반으로 찾아왔다. 김정우라고 소개했다. 간단한 통성명을 마치자 이동혁은 정재현에게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모두 나가고 나만 반에 남겨졌다. 사실 오전에 같이 얘기 나눈 애들이랑 밥 먹기로 했는데 벌써 내려갔는지 온데간데없었다. 밥 혼자 먹느니 그냥 굶는 게 낫다고 생각했고, 굶느니 자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엎드렸다. 그때, 뒷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고 발소리는 내 옆에서 멈추더니 누군가 정재현 자리에 앉았다. 처음엔 정재현이라고 생각했다. 슬쩍 눈을 떠보니까 마주친 건 이민형이었다.




" 너는 밥 안 먹어? "

" 배 안 고파. "

" ... 방금 꼬르륵 소리 났는데? "




 눈치 없게 '밥'이라는 글자를 듣고 울려버린 배꼽시계. 이민형은 같이 밥 먹으러 가자고 했다. 같이 먹자고 해주는 건 고마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두 가지 이유였다. 첫째, 이성과 친해지고 싶지 않았다. 둘째,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급식을 같이 먹는 이성 친구는 없다. 같이 앉지도 못하게 할 뿐더러 그냥 함께 있어도 사귀네 마네 꼬리가 엄청 붙는데 같이 급식이라도 먹으면 얼마나 왈가왈부가 심할까. 아까 그 친구들이랑 먹으라고 하니까 싫다고 한다. 




" 고집 피우지 말고 빨리 가서 먹어 "




 말을 하고 바로 누웠다. 곧 일어나는 소리가 들리더니 교실은 조용해 졌다. 고요하니까 더 배고픈 것 같네. 그냥 아까 같이 먹자고 할 때 내려가서 먹을 걸 그랬나 싶기도 했지만, 내가 그럴 깡이 어딨어. 잠깐 졸았던 것 같다. 기억이 없다. 누가 날 콕콕 찌르는 느낌에 깼다. 이민형이었다. 매점에서 사 온 것 같아 보이는 빵과 음료수를 내 쪽으로 밀었다. 멀뚱멀뚱 쳐다 보고 있으니 "배고프잖아"라며 먹으라고 한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끔뻑끔뻑 하고 있으니 빵 하나를 집어 먼저 먹는다. 뭐, 일단 사주니까 먹긴 하는데...


 오후엔 별 다른 게 없었다. 정재현이랑도 필요한 거 아님 대화를 잘 안 했다. 그냥 그렇게 하루가 흘렀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한 일주일은 그렇게 지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난 잠이 많아서 지각을 밥 먹듯 하는 사람인데 이상하게 일찍 기상했다. 그래서 평소보다 일찍 등교했다. 아무도 없는 교실. 되게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다. 조금 뒤 정재현이 반으로 들어 왔다.




" 일찍 왔네? 맨날 지각하더니 "


" 또 씹네. 너는 내가 싫은 거야 아님 불편한 거야? "

" 싫은 거지. "

" 역시 일찍 와도 싸가지는 안 변하네 "

" 너랑 말싸움 할 시간 없다. "

" 어차피 나가려고 했거든. "




 정재현은 가방만 놓고 밖으로 나갔다. 난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다. 몇 분 지나 인기척이 들려 이어폰을 빼며 뒤를 돌았다. 이민형이었다. 놀란 표정을 하고 뒷문에 서 있었다. 정재현은 아까 나갔다고 알려주자 떨떠름하게 고맙다고 한다. 안 가고 계속 서 있길래 다시 한번 " 정재현 아까 나갔다니까? "라고 하자 동문서답을 한다.




" 와. 너 노래 진짜 잘한다. "

" 나 노래했어? "




 나도 모르게 흥얼거렸나 보다. 노래를 3~4곡 들었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들은 거지. 곧 정재현이 돌아왔다. 책상에서 뭘 찾더니 이민형에게 건네준다. 아마 걔 책을 빌린듯 했다. 물건을 돌려받았음에도 계속 서 있는 이민형이 이상했는지 정재현은 어깨를 잡으며 " 너 어디 아파? 정신차려 "라고 말했다. 그제야 자기 반으로 돌아가는 이민형. 일주일 전에도 좀 이상하더니. 


 반 친구들이랑 친해지고 꽤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정규 수업이 끝나고 교문을 나서는데 누가 뒤에서 불렀다. 뛰어오는 이민형. 나한테 볼일이 있는 것 같았다. 가방도 없고 슬리퍼인걸 보니 방과 후를 앞두고 잠깐 나온 것 같았다. 숨을 고르지도 않고 뭐라고 말을 한다. 뭐라고? 좀 천천히 얘기해봐.




" 너. 번호. 달라고 "




 그래서, 번호 줬냐고? 아니. 내가 그랬잖아. 남자친구 안 만들 거라고. 









연인에게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